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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뮤지컬 마틸다 후기 - 나는 마틸다를 사랑할 수 있을까?

by 김돌민 2023. 1. 1.

12월 16일, 신도림역 근처 대성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마틸다>를 보러 갔다. 사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까지 <마틸다>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한 단체 관람이었고, 여러 공연 후보 중에서 <마틸다>는 나의 선택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약 세 시간가량의 공연 시간 동안 난 온몸이 긴장된 상태로 아이들에게 푹 빠졌고, 커튼콜 이후 몸의 긴장이 풀리며 기분 좋은 노곤함과 함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느낌을 기록해 놓지 않으면 감정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익사할 것 같아서, 이렇게 블로그에 몇 자 남겨본다. 

주의. 약간(?)의 스포 있음.

뮤지컬 마틸다 무대 모습
입장하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던 뮤지컬 마틸다 무대

현실과 판타지의 묘한 줄타기

뮤지컬 <마틸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만화 캐릭터를 보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과장되어 있지만, 때로는 그런 장면에서 오히려 현실적인 부분들을 느낄 수 있었다. 천재 소녀 마틸다의 모습은 분명 이질적이었지만, 이를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어딘가에서 만났을 법한 그런 모습이었다. 만약 내가 마틸다의 담임교사였다면 허니 선생님처럼 마틸다를 구해 줄 수 있었을까?

공연 속 몇몇 장면에서는 <해리포터>가 떠올랐다. 시종일관 유지 중인 부스스한 머리 때문인지 헤르미온느(헐마이니?)와 겹쳐 보이는 주인공 마틸다는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여 트런치불에게 정신적 충격을 준다. 구박을 받는 주인공이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여 악역을 물리치는 구조 또한 해리포터와 닮았다. 하지만 아예 마법사 세계를 설정하고 온갖 판타지 요소를 쏟아부은 해리포터와는 달리, 마틸다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걸으며 공정하지 못한 현실과 맞서 싸우는 느낌이 들었다. 항상 아래 대사를 외치며.

이건 옳지 않아!(That's not right!)

아역 배우들의 엄청난 에너지

사실 공연 전까지도 이렇게 많은 아역배우들이 등장하는 줄 몰랐다. 그런데 주인공 마틸다를 비롯한 아역 배우들 하나하나가 어쩜 이리도 생기발랄한 에너지를 뿜어내는지, 이들이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정말로-약간의 과장을 더하면-눈 깜빡이는 것을 잊을 정도로 무대에 빠져 들었다. 이날 마틸다역을 맡은 임하윤 양은 9살이라던데, 아마 다른 아역들도 비슷한 또래겠지. 공연 내내 이들의 파워풀한 몸짓, 성인 배우 뺨치는 발성, 혼이 담긴 듯한 표정 연기와 감정 표현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커튼콜 때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낸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노래도 춤도 완벽해야 하고, 수 많은 대사를 머릿속에 다 집어넣고 있어야 하는 이런 어려운(?) 일들을 저렇게 훌륭히 해내는 아이들을 보며 조금은 복잡 미묘한 생각도 들었다. 저 아이들의 학교 생활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저렇게 자녀들을 키워내고 있는 보호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실지 상상해 보기도 했다. 어쨌거나, 하윤틸다를 비롯한 이날의 아역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이날의 캐스트. 하윤 틸다와 재림 트런치불.
물론 아역들의 연기를 뒷받침해준 어른 배우들의 연기 또한 최고였다!

상상을 뛰어 넘는 무대 연출

2012년 런던에서 <라이온 킹>을 본 적이 있다. 실감 나게 분장한 배우들이 객석 뒤에서 갑자기 등장하고, 무대 바닥이 회전하거나 솟구치며 스토리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참 놀랐었다. 이번 뮤지컬 <마틸다> 또한 그랬다. 소품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묘기에 가까운 동작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객석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나 공연 끝자락에서 객석 위를 휘젓는 그네를 타며  '어른이 되면(When I grow up)'을 부르던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감동과 감탄 그 중간 어디쯤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인터미션이 끝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정리하던 미스터 웜우드의 관객 소통 멘트, 우리말로 센스있게 번역된 School Song(알파벳 A부터 Z까지 차례로 등장함)을 부르며 활용한 알파벳 블록과 철창, 모든 배우들이 등장하는 피날레 장면에서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던 킥보드 동선까지, 눈과 귀가 모두 즐거웠던 그런 공연이었다.


마틸다와 같은 아이가 우리 반 교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는 마틸다와 같은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사랑을 주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가보다. 하지만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진 못하더라도, 옳지 않은 일에 "댓츠 낫 라이트"를 함께 외쳐줄 수 있는 그런 선생이 되어야겠다,라는 다짐을 하며 공연장을 나섰다.


공연정보

 

뮤지컬 마틸다, 신시컴퍼니

 

www.iseensee.com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홈페이지

 

www.d3art.co.kr

  • 주차: 현대백화점 지하에 주차. 공연장 입구에서 주차권 구입(4,000원) 및 현대백화점 앱에서 무료 주차 쿠폰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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